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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분석]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 실패한 쿠데타는 반란

패러다임 2021. 11. 17. 19:05

우리는 전부 거짓말쟁이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창업자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제일 많이 속이는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창업가들, 특히나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망상에 가까운 거짓말을 한다. 제대로 된 제품이나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미래에 나올지 말지 모르는 제품이 혁신을 만들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을 모아서 팀을 만들고(Team Building) 회사를 만들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녀야 한다. 이후에 약간의 기능을 하는 제품(Prototype)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과장하면서 제품의 가능성을 어필한다. 그로 인해 초창기 사업 자금을 투자받고(Seed Money), 투자금으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 만들어진 제품으로 마케팅하여 인지도를 올리고, 그로 인해 후속 투자를 유치한다(Pre A, Series A, B, C...). 대량의 자금이 들어온 회사는 그 자금력으로 상상으로 펼치던 제품을 실제로 구현한다.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 회사는 회사를 일반에 공개(IPO)한다. 그러면 창업자들이 그동안 말한 사기에 가까운 거짓말들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창업자 후배들은 그 사례를 보며 똑같이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다짐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고, 실패한 쿠데타는 반란이라고 했다.

위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성공하면 선구자가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영입되어 다녔던 스타트업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필자가 근무한 스타트업은 IT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였다. 온라인상에서 협업할 수 있는 툴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온라인상에 협업할 수 있는 툴은 당시에도 매우 많았다. 지금도 구글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Google Docs 서비스가 매우 잘되어 있고, 개발자는 jira, 기획 직군은 notion, ever note 등을 쓰고, 슬랙, Realtimeboard(현재는 Miro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등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는 도구들은 매우 많았다. 그런데도 창업자는 자신의 제품이 세상을 바꿀 것임에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나 당시에는 3년간 무료로 서비스하던 것을 유료로 전환하는 유료화 시기였기 때문에 매출이 폭발적으로 나올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업자를 따르는 설립자(Co-Founder)들도 광신도에 가까울 정도로 회사와 제품을 믿었다. 

 

필자는 기획과 재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숫자로 이해했다. 그래서 창업자의 제품에 대한 확신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CEO가 투자 유치를 위한 매출, 현금에 대한 예측(Cash Flow Estimation)이나 기업 가치평가를 해달라고 하면서도 과도하게 높은 가치(Over Value)를 매겨줄 것을 주문할 때도 현실성이 없다며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필자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는데, CEO가 예상한 매출보다 실제 매출은 1/100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필자가 예상한 매출과 실제 매출이 거의 일치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필자는 회사에서 나오는 각종 숫자, 데이터를 보고 매출을 추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필자는 닥터 둠(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별명)과 다름없을 정도로 비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유료화의 결과라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CEO와 광신도들은 풀이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세상이 우리 제품을 아직 알지 못한다'라며 투지를 다시 불태웠다. 오히려 유료화 이전보다 더욱 업무에 매진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힘을 썼다. 필자는 당시에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함께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CEO는 같이 더 해보자며 지분이나 스톡옵션 얘기하며 회유했지만, 필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이 3개월 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은 사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필자는 퇴사하여 창업하게 된다.

 

당시의 일이 2018년이었으니 벌써 3년이 더 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최근, 해당 회사가 Series A급의 투자를 유치하고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여 미국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쉽게 설명해서 이제 기업가치가 50억~100억 정도라는 뜻이다. 스타트업 창업 후 7년이 된 시기에 일궈낸 성과였다. 필자는 그것을 보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당시에는 숫자를 근거로 판단하면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숫자는 사실(Fact)이었고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 회사는 어렵다고 판단했었던 듯싶다. 하지만 거짓말은 사실이 되었고, 쿠데타는 혁명이 되었다.

 

Balance

그러면서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균형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린 분석도 좋고, 린 스타트업도 데이터도 모두 좋다. 하지만 너무 데이터에 의존하면 꿈을 잃어버리게 된다. 혁신이란, 지구를 넘어 달에 가는 문샷(Moon Shot)의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과거에 했던 것의 약간 개선 버전의 제품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창업자의 거짓말이 점점 명확해질수록 기존 데이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거짓말만 믿고 가면 단순히 현실을 왜곡해버리는 현상만 벌어지게 된다.

 

즉, 린 분석은 데이터에 근거하여 회사의 의사결정을 명확하게 해 주지만 꿈을 꾸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창업가의 거짓말은 꿈을 꾸게 해 주지만 과하면 사기가 된다. 즉, 창업가의 거짓말을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곳으로 돌리는 역할로 린 분석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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